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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_뻘소리

2016.07.07 : 다시 이곳

노란두줄 2016. 7. 8. 22:30


2015년 5월 5일, 

한 때 이런 저런 이유로 한창 자전거를 타고, 이를 더 빠르게 타는 것만 보였다.
지금 돌아보면 무모했던, 앞만 보라고 두 눈에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와 하등 다를 바가 없던 일년 전,
그렇게 나의 쇄골은 부러졌다. 뼈는 부러지고 헬멧도 부서지고 옷들은 찢어지고-

두 눈을 떴을 때 경사진 도로 한 켠에 누워있는 나를 걱정스래 바라보는 네 사람의 눈동자를 보았고, 그 중 두 사람의 손은 바삐 내 오른팔을 고정하고 있었다.

인근 병원에서 긴급 처치와 필요한 영상을 찍고 현재의 차에 실려 수원으로 와 빈센트 병원에서 쇄골 고정 수술을 했던 작년 5월 7일, 그리고 어제 부실공사로 지어진 교각 다리같던 내 쇄골을 잡아주던 기구를 제거했다.



하나의 판과 여덟 개의 볼트들. 
두 동강나 제 자리를 모르던 뼈를 잡아주던 고마운 녀석들이었건만 어느 새 이들의 도움이 절실하지 않은 때가 되었고 도리어 닿을 때마다 통증만 주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수요일 퇴근 후 입원. 아침 출근을 준비하는 짧은 시간에 이제는 나름 병원에 들고 나는 것이 익숙하다고 망설임없이 간단히 가방 하나에 입원 기간 동안 필요한 물건들을 슥슥 담아 넣는다. 

기본적 항생제 알러지 테스트, 채혈 등을 하고 수술을 위한 제모 등,.



신기하게도 바르고 30분 뒤 물수건으로 밀었더니 잡초밭같은 내 털이 다 밀려나옴,.



일년 전의 시간들이 생각나고 일년 전 병동을 바삐 오가던 얼굴들이 대부분, 그대로 있다.
같은 자리, 같은 시설,
5인실 누워있는 면면은 다르지만 어딘가 부러져 이곳을 찾았기에 익숙한 모습들.

다들 사고로, 병으로 이곳을 찾았기에 옆에 보호자가 있고 지인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된거야, 괜찮아? 
수술은 언제야? 잘 된거야? 
퇴원은 언제? 

찾아오는 이마다 각자의 걱정을 묻고 누워있던 이의 같은 대답, 다행이야라는 안도감, 금방 나을거야 하는 기대감이 반복된다. 
이 반복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 역시 반복된다. 



스트래치카에 실려 지하의 수술실로 내려가 대기하던 시간부터 회복실에서 눈을 뜬 세 시간 후, 그 사이 일년 여를 내 안에 기거했던 금속 조각들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서늘한 수술실, 좋은 결과를 소망하며 잠시 의식을 잃은 이들의 상태를 나타내는 수많은 기기들의 삑삑거림, 눈에 익은 녹색 수술복을 입은 의료진들. 수술실의 익숙한 풍경은 내게 씌워진 마스크가 내 호흡을 이끌어가며 기억 저편으로 넘어갔다.
수술 후 쉬이 사라지지 않는 온몸과 의식의 몽롱함, 수술 전 금식에 이어지는 수술 후 금식과 의무적인 기침과 과호흡, 의식 유지. 
수술실에서 나왔어도 좋은 결과를 위해 내가 해야할 일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병원의 세 끼는 오전 7:30, 오후 12:30 그리고 저녁 5:40 즈음 주어진다.
한참의 기침과 몽롱함과 함께 한 나의 금식은 20:00 즈음에서야 끝났기에 병원에서 나의 첫 끼는 편의점의 신세를 진다. 입원 후 24시간여가 지난 후에야 이곳에서의 첫 끼를 든다. 


또 하루가 지난 지금, 아마도 누구보다 빠른 회복을 하고 있다. 
봉합부에서 나올 수 있는 출혈을 대비한 피주머니에는 이틀이 지나도록 채 20ml가 안되는 피만 보이고 입원 환자의 상징인 수액은 진작에 걷어냈다. 

그 사이 가지고 온 한 권의 책을 다 읽으며 왜 읽다 말고 내두었는지, 이제사 다 읽었는지 잠시의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랬다면 달랐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10cm 차이로 숨을 건지고 식구들과 같이 있는 내 앞의 청년을 보며 천운이란 이런건가,. 하는 생각을 해보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지인들과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과거를 그려본다. 
회진으로 소독으로, 처치를 위해 찾아오는 의료진과 이들에게 쏟아지는 궁금함과 걱정의 질문, 이어지는 의료진의 덤덤한 대답을 보며 입장의 차이와 간극을 느낀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지만 병원에서의 경험은 다른 곳에서 불가능한 이곳만의 경험이고 여기서만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을 이끌어낸다.

평소에 경험하는 감정의 간극보다 한결 큰 감정의 기복. 
같은 장소에 공존하는 공존할 수 없는 감정들의 혼재.
여유롭게 이곳을 나서는 이들과 의식조차 없이 이곳을 찾는 이들.

양 끝단의 여러가지가 같이 있는, 세상 어디에도 흔치않은 공존의 장소이기에 그렇겠지.
이렇게 3박 4일의 시간을 보내고 내일이면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곳에서 보이는 대척점의 공존을 잘 새기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나의 일상은 좀 더 부드러울 수 있을까

대체 나는 지금 뭐라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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